안녕하세요, 꿈꾸는 약사입니다. 어느덧 5월에 군 입대를 한지 벌써 4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늦은 나이에 입대를 결정하고, 마냥 흘러가는 시간을 이대로 놓치기 싫어 지난 날들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많이 힘들었던 시간들을 뒤로하며, 군 입대를 앞두고 어떤 일들을 하면서 지냈는지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앞으로 입대를 앞둔 국군 장병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글을 몇가지 작성해보려 합니다.
입대를 앞두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흘러가는 시간을 마냥 놓고 있자니 아쉬웠고, 바삐 지낸 세월들에 대해 보상받고 싶었던 심리도 있었는지 무엇인가를 공격적으로 할 기력도 남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채워넣었던 자취방과 나의 생활들을 '정리'해 나가야 할 시기였다. 누군가에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특히 '정리'가 어려웠다. '정리정돈'이 아닌 '정리'는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을 남기는, 결국에는 무엇인가를 버려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도 관계도 쉽게 버리기 어려웠던 나에게, 지난 생활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버거운 무게였다.
그럼에도 마냥 손놓고 있을수는 없었다. 자본주의 속에 살며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돈이 삶에 얼마나 큰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적절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약국 일을 시작했다. 2월 초부터 구인하기 시작했고, 당시 대학원 석사 생활을 마무리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3월과 4월만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약국에 취직하고자 했다. 집과 30분 이내의 거리여야 할 것, 평일 풀타임이어야 할 것 등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자리를 쉬이 구할 수 없었지만, 2월 중순 경 어느 한 약국의 국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면접을 본 뒤 꽤나 입맛에 맞는 조건대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약국 일을 하며, 정말 세상에는 쉬운 일 하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를 믿고 고용해준 국장님과 약국에 폐 끼치지 않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베테랑 약사의 눈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약사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최선의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고, 가끔 환자들에게 내 진심이 닿을때 들을 수 있는 감사 인사를 연료삼아 계속해서 일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고, 입대 직전에 이렇게까지 일해야 할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끝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계속해서 일했다. 결국 끝은 왔다.
봄이었다. 마침 그 시기에 괜찮은 봄 코트를 구매하고 싶었다. 입대 직전 마지막 해외 여행으로 계획하고 있던 대만 여행에 괜찮은 옷을 입고 가고 싶기도 했고, 약국 일로 어느정도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유도 있었다. 이 때 한창 워크웨어가 유행을 타고 있었고, 내가 대학교 신입생 때 유행했던 '칼하트'라는 브랜드가 어느정도 명성을 되찾고 있었던 시기였다. 아메리칸 브랜드의 투박하고 클래식한 멋을 가장 잘 반영하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항상 정상에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인고의 시간을 거친 뒤(한동안 이 브랜드에 관심이 식었었고, 그 시기동안 잘 팔린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다시 잘 정제된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난 것 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칼하트 WIP OG 제품을 구매했다. 셋 중에서 가장 가격이 비쌌지만, 어느 한 유튜버의 비교 후기에서 '가장 웨어러블하다'라는 문구에 꽂혀 구매를 결정했었다. 다만 안감이 다소 두꺼운 소재로 되어있어 꽤 추운 날씨에 가용 가능했고, 봄용 코트로는 부적절했다. 다른 대안으로, 칼하트 오리지널과 칼하트 WIP 사이에서 고민했다. 입대로 인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가성비의 측면에서 구매를 고심하다 저렴한 선택지인 칼하트 오리지널로 결정했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원단이 다소 뻣뻣하고, 옷에서 원단 냄새가 나서 데일리하게 활용하는 것에 무리가 있을듯 했다. 결국, 가장 먼저 고민했었던 칼하트 WIP 디트로이트 자켓(사진의 세번째)으로 결정하고 나서야 내가 목적에 맞는 옷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은 어쩌면, 선택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나에게 가장 맞는 옷을 찾아나가는 과정과 맞닿아있지 않을까.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젠틀몬스터와 메종 마르지엘라가 콜라보한 제품으로 두 개의 뿔테 안경을 두고 구매를 고민했던 일이었다. 하나는 MM010, 다른 하나는 MM009. 숫자 하나의 차이었지만, 많은 것이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 쉽게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정의 무게는 온전히 내몫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무한 자유에 뒤따르는 무한 책임은 20대의 나에게는 아직 버거웠다. 내 얼굴형에는 MM010의 쉐입이 더 적절해보였지만, 왜인지 모르게 좀 더 둥그런 쉐입의 MM009가 갖고 싶었다. 결국 MM010은 방출을 결정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그러나 다분히 내 취향이 담긴 MM009를 구매하게 되었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랬다. 누가봐도 좋아보이는 일, 적절한 커리어. 그런 순탄한 삶은 취하기가 꺼려졌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어디서 생긴 용기일지 모르는 오기와 함께 샛길로 틀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뻔한 일은 싫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갖게 될지 예측이 가는 일들은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예상하기 어려운 인생을 선택해왔고, 그 과정의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당근마켓의 열렬한 이용자였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사용하는 것들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가격적인 메리트와 더불어 내가 가진 것들을 처분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당근마켓이 추구하는 '로컬성'은 동네 지역주민들과의 유대를 형성하기에 적절한 방향이었다. 이름 모를 나그네에게도 친절해지는 법을 배웠고, 일정과 장소를 조율하며 타협과 양보를 배웠다. 한때 60도 이상의 뜨거운 온도를 가진 당근러였지만, 또 한때는 바빠 당근거래를 놓고 지냈더니 50도, 40도로 낮아졌다. 항상 뜨거울 수는 없는 법인가보다.
이미 끝난 3월이지만, 글로써 놓아주기도 아쉬운 군 입대 2개월 전의 일들. 입대를 앞둔 장병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정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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